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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시

일말의 계절 - 이병률

by 가을, 바람 2014. 9. 2.

 

 

 

일말의 계절  - 이병률



아무도 밟지 말라고 가을이 오고 있다
무엇이든 훔치려는 손을 내려놓으라고 가을은 온다
힘 빠지는 고요를 두 손으로 받치듯
무겁게 무겁게 차오르는 가을

가을이 와서야 빨래를 한다
가을이 와서 부엌 불을 켜고 국수를 삶다가
움켜쥔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도록 내버려 둔다

먼 길에서 돌아와 듣는 오래전 남겨진 메시지
우편물이 반송되었으니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마련할 것이 없었으므로
생애 단 한 번 우체국을 찾아 보낸 것이 있다
계절이 오는 것도 다 받아내지 못하는 우체국으로
보낸 것이 되돌아왔다

되돌려 받기를 잘했다
괜히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생의 부분을 보냈다

파는 것인지 가려가라는 것인지
길 앞에 쌓아놓은 가을 낙과를
하나쯤 가져가도 좋겠다

 

 

 

Blueprints of the Heart - David London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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