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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시

기억의 자리 / 나희덕

by 가을, 바람 2014. 2. 11.


 

 

기억의 자리 / 나희덕

 


어렵게 멀어져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추억의 속도보다는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보여줄 수 있는 건
뒷모습뿐, 눈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뿐일 것이니
도망치는 동안에만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의 어귀마다 여름꽃들이 피어난다

 

키를 달리하여
수많은 내 몸들이 피었다 진다
시든 꽃잎이 그만
피어나는 꽃잎 위로 떨어져내린다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걷는다, 빨리
기억의 자리마다
말이 멈추어선 줄도 모르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온 줄도 모르고

 

 

 

Vanessa Mae / RoxannesV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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