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 저녁/ 조행자
말하지 않아도 되는 날은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편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나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생각이 그럴 수 있다에 머물렀을 때
난 그저 씩 웃으며 마음을 지웠다
어두운 대기 속으로 몸을 감추는
들꽃 길을 따라가며
내 존재의 자리는 어디인가란 생각보다
무관심에 관한 긴 휴식을 떠올렸다
가끔은 어둠의 가장 깊고 부드러운 안식에서
수 없이 그렸다 지웠던 욕망의 얄팍함에 기대었던
어둠의 과거를 생각했다
무엇인가 지상에서의 부질없는 것들은
누가 나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해도
내 부재의 자리를 가볍게 즐기는 오늘 저녁 생이여,
그래도 끝내 삶을 버려두지 않기에
마음 지운 자리 꼿꼿이 피어낸 망초꽃 한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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