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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시

이수익, 빈집

by 가을, 바람 2017. 7. 3.






이수익, 빈집



뒷마당의 몇 그루 대추나무엔
빠알간 대추열매가지 무겁게 열렸건만
따는 사람 없어 사람의 것이 아닌
하늘의 열매 같고

사립문 늘 열린 채 경계를 지운 빈집에는
이 방 저 방 기웃거려보는 아이들 앞에
머리 가득 푼 처녀귀신 나타날지 몰라
삐걱거리는 방문소리에 쭈룩쭈룩 하얗게 소름끼치는

이 집에, 그러나 벌레들 편안한 거처 마련되고
손닿지 않는 뜨락엔 잡풀들 소리치며 돋아나
폐허의 아름다운 향연 한창 벌어지고 있으니

빈집, 그 쓸쓸함, 기막히게 좋은 맛이다
빈집, 그 황폐함, 눈부시게 좋은 눈요기다
빈집, 그 적막함, 가슴 저리게 좋은 위안이다




Angel Falls / Paul Law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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