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닳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 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 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읽고 싶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 / 정호승 (0) | 2014.04.03 |
---|---|
너의 목소리 / 오세영 (0) | 2014.03.24 |
그는 / 정호승 (0) | 2014.03.15 |
그리우면 가리라 / 이 정하 (0) | 2014.03.13 |
새벽 편지 / 곽재구 (0) | 2014.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