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 이형기
적막강산寂寞江山에 비 내린다
늙은 바람기
먼 산 변두리를 슬며시 돌아서
저문 창가에 머물 때
저버린 일상日常
으슥한 평면에
가늘고 차운 것이 비처럼 내린다
나직한 구름자리
타지 않는 일모日暮 ......
텅빈 내 꿈의 뒤란에
시든 잡초 적시면 비는 내린다
지금은 누구나 가진 것 하나하나 내놓아야 할 때
풍경은 정좌正坐하고
산은 멀리 물러앉아 우는데
나를 에워싼 적막강산
그저 이렇게 저문다
살고 싶어라
사람 그리운 정에 못이겨
차라리 사람 없는 곳에서 살아서
청명淸明과 불안不安
기대期待와 허무虛無
천지에 자욱한 가랑비 내린다
아, 이 적막강산에 살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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